LOT 214

Kim KyuJin (海岡 金圭鎭, 1868 - 1933)

Bamboo

ink on fabric

128×370cm, 10폭 | 1924

Estimate KRW 8,000,000 ~ 2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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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Screen



해강 김규진은 서화에 모두 능해 다양한 작품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글씨는 묘경(妙境)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데, 다양한 서체에 능했던 만큼 그 필력은 자연스레 그림에도 반영되었다. 해강이 독자적 경지를 이루었던 묵죽도에서 문자향(文字香)이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언급한 것처럼 해강은 다양한 그림을 남겼지만 대나무에 특히 뛰어났다. 세죽(細竹), 풍죽(風竹), 통죽(筒竹) 등 다양한 형태의 대나무를 묘사했고 당시 근대화단에서 통죽이 유행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출품작은 해강 김규진의 다채로운 묵죽이 한데 모인 작품이다. 통죽을 기조로 하였고 사이사이 세죽을 배치하여 풍부한 내용 구성을 보이고 있다. 병풍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으나 작품에서 시원한 공간감과 여유가 느껴지는 데에는 화면 전반을 아우르는 해강의 통찰력에서 비롯되었다. 


먼저 대숲의 풍성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대나무를 빼곡하게 그리되 앞뒤 대나무의 먹색을 달리 했다. 앞쪽의 대나무는 농묵을 사용했고 뒤쪽의 대나무는 담묵을 사용해 공간의 원근감을 살렸다. 더하여 하단에 작은 줄기와 잎을 그리고 중단을 비운 채 줄기 끝 부분에 잎을 모아 그리는 방식을 부분부분 취하고 있다. 이는 해강이 통죽을 그릴 때 자주 사용하던 방식으로 부분부분 비어 있는 공간을 연출하여 답답함을 해소했다. 마지막 폭에 쓰인 화제는 뻗어 나간 대나무 가지와 모양을 맞춘 듯 써내려 갔는데, 내용은 물론 묘경을 이룬 그의 서체가 작품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負郭依山一徑深, 萬竿如朿翠沉沉. 從來愛物多成癖, 辛苦移栽爲竹林.

甲子 小春 海岡


성곽 등지고 산 기댄 길은 그윽하고, 한아름 묶은 듯 대숲은 푸르다. 

무언가 좋아하면 이내 푹 빠져, 애써 옮겨와 대숲을 일군다.


갑자년(1924) 소춘(小春, 10월)에 해강





참고문헌

이선옥, 『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 돌베개, 2011


Korean Traditional Art and Craft lots are prohibited from export and/or repatriation from the Republic of Korea.

Artist Infomation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취옹(醉翁)·삼각산인(三角山人)·백운거사(白雲居士)·무기옹(無己翁) 등 많은 별호를 썼다. 외숙부인 소남 이희수(少南 李喜秀)에게서 글씨를 배우고 18세 때 중국으로 유학을 간 뒤, 1893년 귀국했다. 귀국 후 고종황제의 어명으로 왕세자 영친왕의 서법(書法)을 지도하는 서사(書師)에 임명되었다. 1906년(추정)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진술을 배우고, 1907년 '천연당(天然堂)'이라는 사진관을 개설했다. 1913년 천연당사진관 내에 최초의 근대적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觀)'을 병설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의 사군자부와 서예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예서·행서·해서·초서 등 각 서체와 그림에 능하였으며, 특히 묵죽(墨竹)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고 서예는 대자(大字)를 잘 써서 다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작으로 〈묵죽도(墨竹圖)〉, 〈유연도(柳燕圖)〉, 〈월야죽림계류도(月夜竹林溪流圖)〉, 〈왕죽도(王竹圖)〉가 있고, 산수화로 창덕궁 희정당의 벽화가 유명하다. 저술로는 《죽란보(竹蘭譜)》, 《서법진결(書法眞訣)》이 있다.
LOT 214

Kim KyuJin (海岡 金圭鎭, 1868 - 1933)

Bamboo

ink on fabric

128×370cm, 10폭 | 1924

Estimate KRW 8,000,000 ~ 2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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